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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1호 금형기술사이기 전, 중소기업의 인재’ 김은영 기술사

여기에 2015. 11. 25. 16:18


국내 최초 여성 금형기술사 1호의 탄생!
 ‘여성 1호 금형기술사이기 전, 중소기업의 인재’ 김은영 기술사




<편집자주>
김은영 기술사가 국내 최초로 ‘여성 1호’ 금형기술사의 타이틀을 거머쥐며 업계에 화제가 되고 있다. 이는 남성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금형산업에서 이뤄낸 쾌거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앞으로 숨은 여성인재의 빛을 발하게 하고 싶다는 그녀를 만나 그간의 노력과 향후 비전을 들어봤다.

취재 임단비 기자(press7@engnews.co.kr)




난 1987년부터 2015년 지금에 이르기까지 금형기술사 자격을 획득한 사람은 2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필기와 실기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이 시험의 2014년 합격률은 필기 3%, 실기 33%에 불과하다. 이처럼 금형에 있어 국가가 공인하는 가장 권위 있는 기술자격인 금형기술사를 손에 거머쥐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내 최초로 여성 금형기술사가 등장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대학시절부터 금형을 전공하며 기술사 자격을 따기까지 회사와 공부를 병행하며 오롯이 금형분야 외길을 걸어온 김은영 기술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Q. 최초의 여성 금형기술사가 된 소감은.

A. ‘자격을 획득하면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술사 공부를 했었다. 그래서 더 기쁘고 뿌듯한 건 사실이다. 또 한편으로는 국내 최초 여성 기술사라는 신분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 어깨가 무겁다. 지속적인 경기침체로 금형산업의 적신호가 꺼지지 않고 있는 지금,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역량 강화를 통해 귀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더불어 여성 2호, 3호가 꾸준히 배출되길 기대하고 희망한다.



Q. 여성 비율이 낮은 금형을 직업으로 삼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A. 금형을 하신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직도 아버지를 따라 놀러가던 금형 공장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바닥에 놓인 금속과 기계 돌아가는 소리, 작업장의 기름 냄새는 신기하면서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래서인지 유달리 기계를 좋아했던 어린 나에게 모방CNC는 로봇이고 어벤져스였다. 이처럼 유년시절부터 금형과 친숙했기 때문에 대학진학 시 금형과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금형공부는 “이것이 진정한 공부이자, 내 길”이라 느낄 정도로 즐겁고 재밌었다.
금형은 여자로서 새로운 도전이자 쉽지 않은 결정이 아닌,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꿈 자체였다.



Q. 아버지가 금형인인만큼 도움도 많이 주셨을 것 같다.

A. 아버지가 금형을 하신만큼 쉽게 이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딸이라고 봐주시는 것 없이, 사출작업장에서 포장과 바리제거부터 시켰을 정도로 일에서 만큼은 엄격하셨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 닮아서였을까. 나 또한 매순간 자신에게 엄격했고, 서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설계부서에서 근무할 내일을 위해 사출작업장에 서 있는 오늘을 값지게 보내고자 설계학원과 훈련기관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했었다. 그렇게 항상 미래를 위해 한걸음 더 준비하며 경력을 쌓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그렇게 안하셨다면 여자로서 쉽지 않았던 그간의 공부와 노력을 이뤄낼 수 없었을 것이다.



Q. 금형기술사가 되고자 결심한 이유가 있나.

A. 사실 남성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많은 금형업계에서 여자로 살아남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지도,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 오로지 김은영, 그 자체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금형기술사가 되고자 결심했다. 명함처럼 내밀어 내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절대값이 있다면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 받거나 신뢰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어도 없을 것 같았다.

더불어 금형인인 아버지도 결심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검증도 안된 상황에서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함께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함께 일하는 동료와의 믿음과도 직결됐다. 이처럼 나는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고, 오늘날의 금형기술사가 되는 쾌거도 이룰 수 있었다.



Q. 여성 금형인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A.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함께 이해하고 공감해줄 여자동료가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고 외로웠다. 주위에는 말수가 적은 남자가 대다수라 함께 일하는 동료와 회사일로 나누는 짧은 수다가 그리울 때가 많았다.
이런 외로움보다 더 힘들게 하는 건 ‘여자가 많이 아시네요?’라는 말이었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만으로 객관적 평가가 아닌 주관적 판단으로 금형에 대해 잘 모를 것이라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무시와 냉대를 종종 받다보면 비단 나뿐만 아니라 금형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다른 여성들도 겪고 있을 것이라 생각돼 가슴이 아프다. 



Q. 여성 금형인이라 강점도 있을 것 같다.

A. 여성 특유의 유연함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상당한 강점이 된다. 남성의 비율 높아 다소 권위적이고 딱딱할 수 있는 금형업계에서 여성 금형인은 소통과 공감의 리더십을 잘 발휘해 분위기메이커로서의 역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 금형인은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는 점이 가장 큰 강점 중 하나이다.
작업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플러스 요인은 작은 부분까지 꼼꼼히 관리하고 확인하는 섬세함도 강점이다. 이는 정교한 금형 작업에 많은 도움을 준다.



Q. 여성 1호 기술사가 된 만큼 각오도 남다를 것 같다. 앞으로의 포부가 있다면. 

A. 작년 금형기술사 시험의 여성응시자는 단 2명뿐 이었다. 이처럼 금형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여성인재들이 시험에 지원조차 안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 금형기술사가 탄생된 만큼 저를 통해 용기를 얻고 세상 밖으로 나와 새로운 도전의 첫 걸음을 내딛었으면 한다. 나아가 금형에 종사하는 많은 여성들을 위해 그들이 정착하고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더불어 나는 여성 금형기술사이기 전에 중소기업의 인재이다. 대기업의 지원 없이 스스로 자발적인 공부를 통해 지금의 나로 성장한 것이다.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많은 인재들이 나처럼 다양한 업무능력을 폭넓게 배우며 스스로의 역량을 꾸준히 키워 제2의 김은영이 많이 배출되길 바란다. 또한 그 인재들이 인력난으로 힘든 금형산업을 이끌 든든한 뿌리로 거듭나길 희망한다.


 
Q. 금형기술사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조언 한마디를 한다면.

A. 금형기술사를 준비하는데 있어 중요한 부분은 자격요건의 충족이라 생각한다. 의외로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인재가 많다. 혹 자격요건을 갖췄다면 기초부터 차근차근 내실을 다져야 한다. 숙련된 분야일지라도 기본을 다지고 전공 및 전문 분야를 쌓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필히 비가 온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인디언의 간절한 염원이 깃들어 있는 말이다. 금형기술사 시험 또한 마찬가지다. 일 년에 한번 치러지는 만큼 간절한 마음을 담아 공부한다면 그 노력과 정성이 성공으로 이끌어 나가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간절히 금형기술사가 되길 원했고, 될 때까지 도전하려 했었다. 금형의 인재들이여 간절히 꿈꾸고 뜨겁게 도전해라!




※ 출처 : EngNews (산업포탈 여기에) - ‘여성 1호 금형기술사이기 전, 중소기업의 인재’ 김은영 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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